SOONCHUNHYANG INDUSTRY-ACADEMY COOPERATION FOUNDATION
이차전지 분야의 선도적 연구자로 손꼽히는 정순기 교수는BK21, 에너지공유대학 등 다양한 국책 연구과제를 이끌며 의미 있는 성과를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최근에는 핵심연구지원센터 조성사업 추진을 통해 학내 소재/부품/장비 분야 연구장비 인프라 환경 개선에도 앞장서고 있다.
정순기 교수를 만나 관련 연구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교수님께서는 오랜 시간 이차전지 분야에서 실험 기반의 연구를 이어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연구자로서 긴 시간 동안 한 분야를 탐구해오신 데에는 분명한 동기와 철학이 있으실 것 같은데요. 최근에는 어떤 주제에 특히 마음이 끌리시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방향에서 연구를 확장해 나가고자 하시는지도 함께 여쭙고 싶습니다. 이차전지 기술은 스마트폰, 노트북, 의료기기, 전기자동차를 넘어 다양한 미래 산업의 기반으로 활용 영역이 빠르게 확장되고 있는 만큼 교수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연구를 통해 가슴이 뛰고 마음이 설레는 그 순간을 마주하는 일은, 제게 늘 특별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그 순간은 어느 날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질문과 실패, 그리고 인내의 시간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저는 데이터를 쌓고 논문을 발표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아직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향해 조심스럽게 첫 발을 내딛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연구는 축적에서 시작되지만, 그 축적 속에 스며든 고민과 상상이 결국 새로운 길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합니다.
이차전지는 스마트폰, 노트북, 전기자동차를 넘어, 에너지 저장 시스템, 도심항공모빌리티(UAM), 해양 탐사, 우주 개발 등 다양한 미래 산업의 핵심 기반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차전지 기술의 응용 가능성보다는, 그 바탕이 되는 기초적인 원리와 현상의 이해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있습니다. 지금도 전지를 구성하는 물질과 반응 메커니즘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실험을 반복하고 이론을 들여다보고 있으며, 작은 원리 하나를 밝히는 일이 미래 기술의 토대가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기초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우리 곁에 가장 익숙한 존재인 ‘물’에 새로운 가능성이 담겨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이 제 마음을 자주 움직입니다. 물이라는 평범한 물질이 전기화학 반응의 주체가 되어 에너지 전환의 새로운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생각은, 지금도 저를 설레게 합니다. 또한 자원 순환을 고려한 배터리 재활용 기술, 칼슘이나 나트륨 기반의 전지 시스템처럼 조금은 낯설지만 의미 있는 주제들을 따라 조심스럽게 탐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연구라는 것이 반드시 지금 당장의 성과를 내야만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작고 낯설게 보일지라도, 언젠가 누군가의 손에 의해 열매를 맺을 수 있다면 그 씨앗을 뿌리는 일 자체로도 충분히 가치 있다고 믿습니다. 무언가를 처음으로 마주하는 그 짧은 전율, 그리고 그것이 인류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갈 수 있다는 희망. 바로 그 설렘이, 제가 이 길을 오래도록 걸어가고 싶은 이유입니다.
Q. 지난 2월에 공모했던 핵심연구지원센터 조성사업(지역특화분야)에 공대 소재 관련 학과 교수님들과 함께 “탄소저감 모빌리티·디스플레이 소재분석센터”로 신청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동 사업을 신청하게 된 계기와 사업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목표와 비전이 궁금합니다.
이번에 신청한 ‘탄소저감 모빌리티·디스플레이 소재분석센터’는 단순히 분석 장비를 구축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우리 대학의 연구 환경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연구자들이 실험에서 분석까지의 흐름을 끊김 없이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더 나은 연구의 토양을 가꾸기 위한 시도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대학에서 연구를 시작한 이래, 제게 가장 안타깝게 다가왔던 현실은, 아주 기본적인 분석조차도 학내에서 해결하지 못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연구실에서 막 떠오른 아이디어를 바로 실험으로 옮기고, 그 결과를 곧바로 분석하며 다음 단계를 구상해나가는 일은 연구의 속도와 방향을 좌우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단순한 분석 하나를 위해 외부 기관에 의뢰하고, 며칠씩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연구의 맥이 끊기는 상황이 반복되었고, 그 시간이 쌓일수록 설렘보다는 피로가 먼저 찾아왔습니다.
이 사업을 준비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런 비효율을 후배 연구자들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대학에 몸담은 지 20년이 되어가며, 연구 환경 개선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던 지난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책임감도 함께 느끼게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해온 동료 교수님들이 많았고, 서로의 공감과 연대가 있었기에 이 작은 시도를 함께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 하나의 사업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연구자들이 불필요한 시간 낭비 없이 오롯이 ‘자신의 질문’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은 분명히 의미 있는 시작입니다. 저는 연구 인프라를 단순한 편의시설이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가 움트고 가슴 뛰는 연구가 자라나는 ‘토양’이라고 믿습니다. 아직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이 시도가 언젠가 우리 대학의 연구자들에게 다시 한 번 설렘을 안겨주는 계기가 되기를 조심스럽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Q. 교수님의 연구실 홈페이지를 방문해보면 연구 외에도 학생들과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신 모습과 학생들의 표정 하나하나가 활기차면서도 친근한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어 참 인상 깊었습니다. 연구실 운영에서 학생들과의 관계를 부드럽게 이끄는 교수님만의 노하우가 있으실까요? 연구실에 있는 학생들이 때론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연구 앞에서 포기하고 싶어 할 때 선배 연구자로서 어떤 조언을 해주시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연구를 이어가는 데 있어 특히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가슴이 뛰는 연구’를 하는 일입니다. 연구실을 운영하면서도 학생들에게 늘 이야기합니다. “반드시 정답을 찾지 않아도 괜찮으니, 너의 마음을 움직이는 질문을 먼저 찾아보자”고요. 연구는 결코 쉬운 길이 아니지만, 단 한순간이라도 설렘을 느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늘 “즐겁게 연구하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즐거움은 남이 하지 않는 길을 걸을 때 비로소 생긴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실패는 당연한 것이며, 오히려 실패가 없는 연구는 어떤 면에서는 더 위험할 수 있다”고 말하곤 합니다.
실험이 잘되지 않아 좌절한 학생에게는 종종 이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교과서 속 간단해 보이는 이론조차 수많은 실패와 비난 속에서 완성된 결과라는 사실을요. 학생들은 흔히, 교과서에 실린 지식이 천재 과학자들의 단번의 깨달음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오랜 시행착오와 끈질긴 탐구는 물론, 충분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비난을 견뎌야 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때로는 살아 있는 동안 단 한 번도 학계로부터 주목받지 못하다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겨우 그 가치를 인정받은 연구도 있습니다. 더 안타까운 경우는, 그 비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스스로 삶을 마감한 과학자도 있었다는 점입니다. 저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E. H. Carr의 말을 빌려, 지금 우리가 겪는 실패와 흔들림을 견디게 해줄 실마리는 선배 과학자들의 삶과 태도 속에 숨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과학의 역사에는 묵묵히 실패를 견디며 끝내 연구를 완성해낸 이들이 수없이 존재합니다. 저는 “좋은 연구는 그런 과정을 통과한 결과”라고 믿으며, 그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자주 전합니다. 학생들이 자신만의 질문을 찾아가고, 시행착오 속에서도 그 여정을 즐기며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저는 큰 보람을 느낍니다. 그리고 졸업 후에도 그 경험이 도전정신과 문제 해결 능력으로 이어져, 각자의 삶에서 든든한 자산이 되리라 믿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제가 연구를 바라보고 평가하는 방식에도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논문의 IF(Impact Factor)나 JIF(Journal Impact Factor) 같은 수치가 연구의 절대적 기준처럼 여겨지는 현실에 대해 늘 아쉬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연구의 깊이나 진정성보다 수치가 앞서 주목받는 사례가 많고, 숫자만으로 연구를 판단하려는 시선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는 점은 저에게 적지 않은 고민을 안깁니다. 물론 저 또한 그런 기준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이달의 연구자’로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유도, 어쩌면 수치가 높은 저널에 논문이 실렸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제 생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늘 조심스럽게 의식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연구의 가치를 수치만으로 설명하거나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가능하다면 수치 너머에 있는 연구자의 고민, 진정성, 그리고 탐구의 흔적까지 함께 들여다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연구란 단지 결과물을 남기는 일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얼마나 깊이 고민했고, 어떤 질문을 품었으며, 얼마나 가슴 뛰는 마음으로 그 길을 걸었는가에 따라 빛을 발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저는 그런 과정이 고스란히 담긴 결과물에야말로 진정한 연구의 가치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학생을 지도하는 일에서도, 제가 매일 연구실에 들어서는 마음가짐 속에서도 늘 중심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